나의 집 이야기

January 05, 2022

처음 내 방을 갖게 된 건 9살이 되던 해였다. 그 전까지는 네 식구가 거실도 없는 방 2개짜리 아파트 1층에 살았다. 그러다 거실에 방이 세개고, 그 중 하나는 내 방인 아파트로 이사갔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중학교 1학년이던 14살 때, 처음 엘레베이터가 있는, 심지어 화장실이 2개인 신축 아파트로 이사갔을 때는 로또라도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동향의 집이었는데, 아침에 해가 뜰락말락한 상태에서 푸르스름하면서도 주황빛이 도는 하늘을 보는 게 행복했다.

이후 아빠 일 때문에 우리가 살던 곳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평수도 줄고, 화장실도 1개로 줄었다. 하지만 18층 꼭대기에 햇빛이 너무 잘 들어오던 남향 집이어서 너무 좋았다. 이 곳에 살면서 남향 집의 매력을 처음 알게 되었다. 베란다에 앉아서 따뜻한 햇빛을 맞으며, 고개만 들면 보이는 하늘을 보며 엄마와 믹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노라면 천국에 있는 것 같았다. 전보다 좁아진 방에서 어떻게 하면 쾌적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벙커 침대를 사서 침대 아래 책상을 놓았는데, 아빠가 조명까지 달아주셔서 아늑하니 작업할 맛도 났다.

그 집에서 나와 독립을 해서 현재 8년째 원룸에서 원룸으로 이사하며 살고 있다. 처음에는 기숙사나 아파트에 살 때보다는 내 방이 넓어지고, 혼자 쓰는 화장실, 주방이 생겨서 좋았다. 하지만 계속 살다 보니 혼자 살아도 방 한개 이상은 있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세 개까진 필요 없지만, 한 두개는 있어야 한다. 왜 요즘 시공사들은 1인 가구를 대상으로 원룸만 만들고, 그것도 엄청 좁은 원룸만 만드는지, 수납 공간은 드럽게도 없는지 이해가 전혀되지 않는다.

비교적 최근에 엄마, 아빠는 더 넓은 평수에, 다시 화장실이 2개인 2층 아파트로 이사를 가셨는데 거기도 참 좋다. 2층에는 처음 살아봐서 몰랐는데 나무가 그렇게 잘 보이는지 몰랐다. 가을이면 감나무에 매달린 감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또 2층 집은 엘레베이터를 탈 일이 없어서 밖으로 나가기도 쉽다. 햇빛은 다소 잘 들어오진 않지만, 조명만 잘 해주면 2층도 살만한 재미가 충분히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좁은 곳에서 시작했지만 운좋게 늘 매매로 살았다. 몇년에 한 번씩 이사가야 할 필요도 없었고, 집주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도 없었다. 엄마, 아빠는 돈이 없는 상황에서도 집 구경하는 걸 좋아하셨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모델하우스 구경하는 걸 제일 좋아했다. 살 수 없는 집이어도 모델하우스를 구경하며 이렇게 꾸미고, 저렇게 배치하고를 상상만 하면 신나고 즐거웠다. 그래서 그런가 지금도 이케아처럼 쇼룸이 꾸며진 매장에 가는 게 너무 좋다. 회사만 가까우면 고양 이케아 앞에 살아서 매일 이케아에 가고 싶다.

이렇듯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도 애착이 강하고, 매매의 형태로 주로 살아와서 그런지 하루 빨리 집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다. 전에 올렸던 ‘전세, 매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글에서는 매매도 고민하는 했었지만, 다시 계산해 보니 너무 영끌이라는 판단이 들어서 집을 사는 건 보류하기로 거의 결정했다. 그 사이에 원하는 가격으로 내려간다면 모르겠지만, 거의 희망이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그 대신 지금보다 더 걷고 싶고, 자연 환경이 좋은 지역으로 전세로 이사를 가려고 한다. 그 곳에서 출퇴근을 하면서 지금까지 모았던 시드 머니를 잘 굴려서 재태크에 열중해보려고 한다. 그러면 내게도 집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겠지 싶다. 집을 평생 사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에 갑자기 울컥해서 길가다가 엉엉 울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불만만 갖기 보단 현재 내 상황을 수긍하고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계속 더 경제 공부를 하고, 매매할 수 있는 시점이 올 때 기회를 잘 잡을 수 있게 준비하고 싶다.

이 과정을 글로 잘 기록해놔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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